본문 바로가기

세계여행/산티아고 순례길

파리에서 생장 가는 길 <시작도 안했는데 포기할 수는 없지>

우리가 과연 해낼수 있을까?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해 처음 머리 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고작 11시간의 비행으로 다리에 쥐가 날만큼 지쳐버린 나였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무리는 아니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6개월 동안 체력을 기르기 위한 수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정작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던 나는, 내 몸상태가 그 어떤 때보다 최악인 것을 알고 있었다. 줄인다고 줄인 배낭의 무게가 공항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 무섭게 어깨를 짓누르고, 발목은 체중을 견디지 못해 벌써부터 안달이 났다. 


내 생의 첫 파리, 맥도날드에서 시작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 장 피데 포드(Saint Jean Pide Port)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TGV)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차는 보통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5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우리는 조금 더 저렴한 야간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서 포르트 마요(Porte Maillot)


생장으로 가는 야간 버스는 파리 포르트 마요역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약 10시간 정도 운행한다. 우리는 공항에서 바로 터미널로 출발하여 일단 이 무거운 배낭을 맡기고 파리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리무진을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터미널에 도착 한 시간은 오후 2시. 일단 오후 11시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 티켓을 예매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텅 빈 주차 공간에 작은 티켓 부스 하나 뿐인 이 곳엔 어딜 봐도 짐을 보관할 장소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파리, 포르트 마요역의 버스 터미널


앞으로 남은 9시간 동안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지칠대로 지친 발걸음을 옮겨 시내를 돌아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처에 있는 대형 쇼핑몰과 지하철 역 안으로 내려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보관함을 찾아 한참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한 우리는 고픈 배를 붙잡고 눈 앞에 보이는 맥도날드로 향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에펠탑이 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으로 목을 축이며, 체력 보충을 핑계 삼아 두툼한 고기 한 번 썰어볼 예정이었는데 결국 햄버거, 그것도 맥도날드라니. 


5.8유로, 제일 싼 햄버그를 한 입 가득 넣으며 그래도 맛있다고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거리는 모양새가 가관이다. 


21세기, 아날로그 방식으로 여행 하기


파리에서 고작 10시간 정도 체류할 예정이었던 우리는 심카드를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곧 스페인으로 넘어가는데 굳이 돈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맥도날드에서 배를 채우고 한국에서 미처 사지 못한 등산스틱과 장갑을 구매하기 위해 데카트론에 가기로 했다. 무거운 배낭 덕분에 다른 곳을 둘러볼수는 없는 노릇이라, 꼭 필요한 것들만 하고 터미널 근처에서 타고 갈 야간 버스를 기다리자는 생각이었다. 맥도날드에서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에 접속 해서 겨우 데카트론 매장을 찾았지만, 거리는 무려 2.5km. 게다가 지도를 다운 받기에는 와이파이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 


파리, 개선문(Triumphal arch)


공항에서 시내 지도라도 한 장 들고 올걸. 후회가 막심했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지도를 여러 장 캡처하고 주요 거리 이름을 메모하여 나서는 데 일단 방향 부터가 헷갈린다. 특히 구글 지도에 완벽히 길들여졌던 우리에게 생전 처음 보는 거리에서 방향을 잡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캡처한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거리를 살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한 시간. 데카트론 매장이 눈 앞이다. 정말인지 어깨가 빠질 것만 같았다. 불안정한 네트워크와 지도 한 장 손에 없는 상태에서 긴장은 또 얼마나 했었는지. 10년 전, 핸드폰은 커녕 책 한 권 손에 들고 겁도 없이 혼자 여행을 떠났던 그 시절의 내가 문득 대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시작도 안했는데, 포기할 수는 없지


파리의 개선문 근처 위치한 데카트론 매장은 정말 넓었고, 없는 게 없었다. 일단 필요한 등산 스틱과 모자를 사고 오고 가는 길에 아쉬운대로 파리 시내의 분위기를 느끼며 걷고 또 걷는데 조금씩 하늘이 흐려지고 해가 사라진다. 파리에 도착해서 한 거라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나 먹고 데카트론 매장에 들린 것 뿐이었는데 벌써 해가 지고 있다니. 더 이상 움직일 기운이 없는 우리는 터미널 근처 바(Bar)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퇴근 후 여유를 즐기며 한 잔 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 섞인 우리는 쏟아지는 시선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실내를 피해 비교적 한산한 야외 테라스에 앉아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아무래도 큰 사거리에 위치한 곳이라 소음과 매연 때문에 실내에서 술을 마시는 줄 알았더니, 영수증에 테라스 요금이 따로 붙어 나온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는 파리, 포르토 마요역


야간 버스를 타기 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4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내가 처음 느낀 파리의 모습은 그래, 어쩐지 고독했다. 내 생애 첫 유럽, 파리에 많은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장면을 꿈꾸진 않았었다. 유리 탁자 위에 툭, 하고 성의 없이 내던져지는 맥주 두 잔에 괜히 서글퍼진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기내식과 맥도날드 햄버거가 전부인 우리가 맥주와 곁들어 나온 감자칩을 게 눈 감추듯 먹어버린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3시간 동안의 지루한 기다림


생각해보니 오늘 배낭을 메고 걸은 거리가 한 6킬로미터 정도. 보통 하루에 평균 20~30킬로미터를 걷는다는 순례길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자신만만하게 출발했던 우리였는데 이건 뭐, 순례길의 시작점이라는 생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빠져버렸다. 매일 이런식으로 한달 이상을 걸어야 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거냐며 둘다 고개를 흔든다.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 이 곳에서 멍하니 시선을 고정하고, 우리가 이 곳에 와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해야 겠다는 목표보다는,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 가겠다는 것 보다는, 그저 의미없이 급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잡아두고 싶었다. 걷다가 힘이 들면 멈춰서도 되고, 포기하고 싶으면 그만두더라도 잠시 잡아둔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시작도 하기전에 포기 하지 않으면 그 뿐이었다. 맥주 한 잔을 더 시키고 이젠 완전히 어두워진 파리의 모습을 바라보니 그래, 어쩌면 나는 쉴 새 없이 들려오는 휴대폰의 벨소리도, SNS 알리음도, 해야 할 일도 잠시 꺼둔 상태에서의 완전한 자유를 느끼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 순간 우리는 이미 여행자였다. 


아주 소소한 여행 TIP


파리에서 야간버스 타고 생장가는 법 ㅣ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서 포르토 마요(Porte Maillot) 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탄다. 소요시간은 약 40분에서 1시간 정도. 역에서 내려 버스가 온 반대 방향으로 100m 쯤 걸으면 반대편 주차장에 FLIXBUS 를 탈 수 있는 터미널이 있다. 야간버스는 보통 11시 15분에 출발하여 다음날 오전 9시쯤 바욘(Bayonne)에 도착한다. 버스나, 기차 모두 생장까지 한번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생장과 2시간 정도 떨어진 바욘(Bayonne)에서 내려 생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더 가야 도착할 수 있다. 






이 곳의 모든 글과 사진은 

허가 없이 복사할 수 없습니다.

  불펌 NO



이 글이 마음에 드셨나요? 

여러분의 공감이 더 좋은 글을 위한 응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