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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모로코

<아프리카 스타일로 바꿔볼까?> 에사우이라, 이발소를 가다.

에사우이라, 레게머리에 도전하다.


어디선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그녀의 안달 나는 부름에 슬쩍 곁눈질로 시선을 보내니, '요놈, 잘 걸렸다'라는 표정으로 쭈뼛거리는 내 손을 이끌며 능숙한 호객행위를 시작하는 세네갈 출신의 여인. 시세는 모르더라도 일단 가격을 부르고 깎아보려 하지만 내 말은 통 들리지도 않는지 무조건 의자에 앉히고 본다. 항상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었던 레게 머리지만 이렇게 길거리에서 붙잡혀 달랑 의자 하나 놓고 머리를 내어줘야 할 줄은 몰랐던지라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메디나 성벽 근처, 레게머리에 도전하다.


200 디르함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한데, 애써 바들바들 떨리는 입꼬리를 올려가며 반으로 가격을 깎고 있는 나는, 그 누가 봐도 이미 호구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안 그래도 두꺼운 입술을 씰룩대며 한창 밑지는 가격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원하는 가격에 성사된 흥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진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분홍색 머리끈이 한가득 들어있는 통을 한 손에 쥐고, 보조 노릇까지 충실히 하며 아픔을 참고 있는 나는 결코 제 값을 알 수 없을 테지. 


메인 거리로 들어가는 성벽으로, 세네갈 출신의 사람들이 여럿 모여, 직접 만든 악기나 그림 등을 판매한다. 


세네갈 출신 여인의 레게머리 시술


단돈 만원으로 길거리에서 레게머리를 하고 돌아가는 길, 잠시 카페에 앉아 이리저리 살펴보니 그래도 마음에 든다. 한참 동안 제 멋에 취해 사진을 찍다가 문득 꽤 길어진 신랑의 머리로 시선이 간다. 덥수룩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안 그래도 언제나 다듬어볼까 하는 찰나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자기도 머리 한 번 해볼래?' 슬며시 물어보니 세상에, 앉아서 뒷걸음질을 친다. 한국에서도 심사숙고해서 미용실을 가는 신랑이 여기가 어딘줄 알고 내 머리를 맡기냐며 펄쩍 뛰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 진거나 다름없었다. 


뭐, 마음에 들면 그만이지


몽군, 이발소에 가다. 


메디나 안에서 이발소를 찾아 헤매며, 가기 싫다는 신랑의 손을 이끌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신나게 걸어가는 나를 보는 신랑이 측은하다. 라마단 기간이라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은 가운데 신랑의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걷던 나를 보고 작은 골목에 양쪽으로 자리 잡은 이발소의 주인들이 손 짓을 한다. 조금은 새침한 표정으로 번갈아 두 곳을 두리번거리며 이발소 안을 조심스레 둘러보고 서로 자기네 가게가 최고라며 옥신각신 하는 두 분의 머리스타일을 유심히 보다가 조금 더 젊은 이발사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잔뜩 긴장한 채 앉아있는 모습이 처량하다.


불안해하는 신랑을 어둡고 좁은 이발소 의자에 앉혀놓고, 사진까지 보여주며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열심히 설명해 보지만 영어를 못하는 이발사는 연신 '노 프라블럼'을 외치며 내 눈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발기를 들고 신랑의 옆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처음 보는 신랑의 긴장된 모습에 괜히 미안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덥수룩했던 머리가 깔끔히 정리되고 그제야 한 숨 돌리는 우리를 보며 장난기 많은 웃음을 짓는 이발사. 머리를 털고 나가려는데 잠깐 기다리라며 사람 좋은 얼굴로 신랑이 앉아 있는 의자를 뒤로 약간 젖히고 목에 다시 수건을 두른다. 


수염도 없는 신랑의 턱을 진지하게 노려보다.


당황한 우리를 보며 또 한 번 '노 프라블럼'을 외치곤, 능숙한 손길로 면도칼에 불을 붙여 소독을 하는 이발사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고개가 뒤로 젖혀진 신랑은 물론, 옆에서 사진을 찍던 나조차도 한마디 할 겨를 없이 면도를 시작하는 그. 수염도 없는 신랑의 맨질맨질한 턱에 열심히 칼 질을 해대는 통에 어이없어 웃고 마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흔한 에사우이라의 이발소


부탁한 일도 없고, 할 필요도 없었던 면도를 마치고 뿌듯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발사에게 '그래, 얼마를 주면 되겠니?'라고 물으니, 300 디르함을 내란다. 물가가 저렴한 모로코에서 특히 이 곳 에사우이라에서 300 디르함은 두 명의 하루 생활비와 맞먹는 가격이다. 한국하고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표정이 굳으니, 좀 전까지 환하게 웃고 있던 이발소의 표정도 한층 어두워지며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결국 130 디르함에 합의를 보고 엄청난 손해를 봤다고 툴툴대는 이발사를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왔는데 이거 참 기분이 별로다. 물론 처음부터 가격 흥정을 하지 않고 들어간 우리도 우리지만 이거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작 이런 일 하나로 마음 상해가면서 인상 지푸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서로 위안 삼으며 하나의 좋은 추억거리로 만들면 그뿐인 것을. 결과적으로 볼 때, 한국에 돌아와 여행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웃게 되는 이야깃거리로 남게 되었으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추억 하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아주 소소한 여행 TIP



모로코환율정보ㅣ모로코의 화폐단위는 디르함(DH)으로, 보통 유로 환율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환전 수수료까지 생각해 볼 때 100 디르함에 약 12,000원 정도라고 계산하면 거의 맞는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찢어진 지폐나 훼손 정도가 심한 지폐들은 상점에서 받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와 거스름돈으로 찢어진 돈을 받을 경우, 거절하는 편이 좋다. 다른 곳에서 사용하려고 할 경우 일반적으로 이러한 돈을 취급하지 않으며 은행에서도 바꾸어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사우이라, 레게머리 하는 법 ㅣ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며, 수프라 투어 버스터미널에서 메디나로 들어가는 우측 성벽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세네갈 출신의 여인들이 길에서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고 호객행위를 한다. 다양한 레게머리를 시도해 볼 수 있으나 가격은 천차만별. 일반적으로 4-5가닥의 머리를 땋는 것은 100 디르함(한화 약 12,000원) 이지만 흥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부르는 가격에 반 정도는 깎아야 한다는 것이 정석. 


에사우이라, 이발소 ㅣ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머리를 해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에사우이라는 다른 관광지에 비해 그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하지는 않지만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경우에 대비해 머리를 손질하기 전 꼭 가격을 흥정하여야 한다. 숙소 주인에게 물어본 결과 보통 현지인들이 머리를 깎는 비용은 약 30-50 디르함(한화 약 4,000원에서 5,000원 사이)이지만, 관광객일 경우 100 디르함(한화 약 12,000원) 안 팎이면 좋은 가격이라고 하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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