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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살아보기

언제나 그대로 있어줘, 라페로즈(La Perouse)

내게도 그런 장소가 있다. 혼자이고 싶을 때 마다 혹은 이유 없이 슬퍼진다거나 하는 날이 있으면 언제나 찾아갔던 추억의 장소. 시드니 외곽에 위치한 라 페로즈(La Perouse) 가 바로 그런 곳이다. 누구에게나 혼자 간직 하고 싶은 아름다운 곳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 곳은 나의 호주 생활에 있어서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아 붐비지 않는 이 곳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곳인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타지 생활이 힘들게 느껴지거나 그냥 나만의 시간이 좀 필요할 때면 자주 찾아 가던 곳이다. 호주에서도 특히 집 값이 비싼 시드니 도심에서 살았던 나는 사람들과 모여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생활을 했다. 물론  외로운 생활에서 같이 마음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가끔 혼자만의 공간이나 시간이 필요할 때면 으레 집을 나서야 했다. 


미션 임파서블 촬영 장소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 곳에서 바다와 작은 섬이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앉아있거나, 한국에서 보내 준 책들을 읽으며 정신없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겼다. 그저 조용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이 곳에 도착하고 나서 생각보다 멋진 풍경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라 페로즈(La Perouse)


사실 4년 동안의 호주 생활이 매일 같이 행복하거나 즐거웠던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나고 보니 좋았던 시간보다 매일 고되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더 많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고 밤 늦게나 집에 들어가서 겨우 몇 시간 잠을 자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학교를 다니며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잘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일을 하다가 손을 베어도 대체할 사람이 없어 고무 장갑을 잘라 동여 매고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의사 소통이 원할하지 않아 무시를 당하거나 일을 하며 실수를 한 적도 많았다. 그럴 때 따뜻한 위로를 해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의 실수를 계속해서 비난하고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게 원래 다 그런거라지만 타지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면 가시 박힌 말들이 더욱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언제나 그대로 있어줘


함께 오랜 시간 정이 들었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야 하는 것도 내겐 외롭고 피곤한 일이었다. 물론 호주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도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매번 정을 주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생활에 익숙해져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밀감을 주지 않게 되는 그런 습관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 싫었다. 아무리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 타인을 향한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자연스러워 지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 것들을 모두 기억하고 싶었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 마음이 조금 쉬어야 할 때, 그래서 인지 나는 이 곳에 자주 발걸음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몇 시간 동안 앉아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가끔은 혼자 울고 싶을 때도 나는 이 곳이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곳은 나에게 결코 우울하거나 슬픈 장소로 떠올려지는 것은 아니다. 


작은 해별을 거닐다


근처에는 작은 해변이 있었는데 이 곳 또한 내가 좋아하는 장소 중에 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니라 더욱 좋았던 이 곳에 있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부부나 웨딩촬영을 하는 예비 신랑, 신부들도 볼 수 있었고,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바다로 뛰어들어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혼여행을 갔을 때 다시 한 번 찾은 이 곳에서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 매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요즘도 신랑이랑 가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곳에서의 추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니 나에게만 아름다운 장소는 아닌가 보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그리워 지는 라 페로즈(La Perouse) .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찾을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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