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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친 여행을 꿈꾼다

새벽, 이스탄불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낯선 도시에서의 새벽은 언제나 특별하다.

차가운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도시 속에서의 시간은 어둠을 밝혀 깨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듯 천천히 흐른다.


드디어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트램을 타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동시에 쏟아지는 시선들. 단단히 마음 먹고 집을 나온 듯 커다란 배낭을 메고 두리번 거리는 내가 신기한지 사람들은 연신 나를 쳐다보며 수근덕 되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의 호기심을 애써 외면한 채,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창 밖으로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들은 순식간에 나의 긴장을 누그러뜨렸고, 결국 문이 닫히기 직전 정신을 차린 내가 뛰어나간 그 순간 거대한 배낭이 덜컥 문에 끼어버리고 말았다. 창피함과 당황함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버둥거리며 원망스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그 때, 줄곧 불편한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이 일어나 굳게 닫혀 움직이지 않는 문을 양 손으로 잡아 당기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내 배낭을 밀어주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아 유 오케이?를 외쳐대며 연신 비상벨을 눌러댄다. 벌개진 얼굴을 하고 있던 내가 상황을 인식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문이 열리고, 트램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러댄다. 박수를 치며 나를 안아주고는 웰컴 투 이스탄불.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주히 움직이던 그들의 모습은 언제나 기억속에 남아있겠지. 


이방인에게 보여주는 관심과 친절. 무거웠던 배낭이 가벼워지면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 터키에 도착했구나'  




역에서 내려 1분 정도 큰 길로 가다보니, 사진에서만 보았던 술탄아흐멧 1세 자미(Sultanahmet Camill) 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직 거리에는 사람들도 다니지 않고, 문을 연 상점들도 없었지만, 모스크의 거대함에 꽉 찬 도시의 느낌을 받은건 나 뿐이었을까? 잠시 숨도 돌릴겸 광장에 앉아 맑은 새벽공기를 마시고 나니, 공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튤립과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떠나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그래, 누구나 한번쯤은 저질러보고 싶은 일탈. 아무 생각없이 비행기 표를 끊고 무작정 달려온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추억을 가지고 가게 될 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나였다.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미 '블루모스크' 


'자미'는 이슬람 사원을 지칭하는 터키어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 이라는 뜻이다. 여행자들에게는 블루모스크(Blue Mosque) 로 더 잘 알려진 이 곳의 명칭은 술탄 아흐멧트 1세 자미(Sultanahmet Cmill). 사원의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기 대문에 그런 명칭이 붙혀진 것이라고 한다. 사진에 보이는 6개의 미나래(첨탑)는 자미와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미나래는 사람들에게 에배시간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리를 치는 곳이기도 하며, 외부인에게 자미의 위치를 쉽게 알려주기 위한 것으로 그 기능을 한다. 오스만 제국 때에는 이 미나레의 개수가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도 에외는 아니다. 최고의 자미를 짓고 싶었던 술탄은 당시 2-4개의 미나레가 일반적이었던 전통을 뒤엎고 무려 6개나 만들었던 것이다. 내부에는 260개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이 실내를 비추고 있는데, 그 화려함과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5번, 도시 전체에 울려퍼지는 코란 구절 


일반적으로 이슬람 교도들은 하루 5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는데, 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도시 전체에 예배를 시작한다는 기도문이 울려퍼진다. 처음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들려오는 이 소리에 놀라 두리번 거리기 일수였다. '라 일라하 일라-이-라. 모함메아둔라술루 -일라' 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코란 구절은 5행중 <신앙고백>의 첫마디 인데, 이는 알라가 유일한 신이며, 마호메트는 알라의 에언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자미, 즉 모스크 안에서 에배를 보는 것이 정석이지만, 상황에 따라 집, 거리, 상점 어디에서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행중에 메카(성지)를 향해 하던일을 멈추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매번 같은 시각 울려퍼지는 이 기도문이 전부 라이브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 행여 목이 쉬지는 않을까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이스탄불에 머무는 여행자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도 전해진다. '코란 읊는 소리가 지겨워 질 때, 바로 그때가 터키를 떠나야할 때이다'. 그렇지만 이슬람 문화 특유의 독특한 음색으로 매일 읊어대는 기도문에 귀를 막는 여행자들은 사실 찾아볼 수 없다. 아름다운 거리들, 히잡을 쓴 여인네들, 그리고 수 많은 자미들 사이로 유유히 울려퍼지는 이 오묘한 조화야 말로 터키, 그 곳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터키를 떠나온 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미나레에서 울려퍼지던 웅장한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 하다. 



ISTANBUL . TURKE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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