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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문화

크리스토퍼 놀란 <메멘토>


10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 기억력, 이것이 그가 가진 전부다. 

전직이 보험 수사관이었던 레너드에게 기억이란 없다. 자신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비참한 죽음, 그리고 범인의 이름 존 G. 중요한 단서까지도 쉽게 잊고 마는 레너드는 자신의 가정을 파탄낸 범인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메모와 문신을 사용하게 된다. 즉, 묵고 있는 호텔, 갔던 장소, 만나는 사람과 그에 대한 정보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기고, 항상 메모를 해두며,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하며 기억을 더듬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기억마저 변조되고 있음을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그의 곁에 맴도는 나탈리와 테디라는 남자. 그들은 레너드를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레너드에겐 언제나 새로운 인물이다. 마약 조직의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레너드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나탈리는 테디가 범인임을 암시하는 단서를 보여주고, 테디는 절대 나탈리의 말을 믿지 말라는 조언을 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기억은 기록이 아닌 해석이다. 

어릴적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장소와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것은 꽤나 주관적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편리에 의해 생성되기도 하며, 아름다운 것들만 간직하려는 인간의 나약함이 그 원인이라고 보여진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이기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나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이 항상 똑같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영화 속 레너드는 10분 정도의 기억만 할 수 있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로 소개된다. 습관을 활용한 체계적인 메모를 통해 기억을 대신하며, 아내의 죽음의 이유를 파해치는데 주력을 쏟는다. 영화는 이러한 레너드의 삶을 거꾸로 조망한다. 마치 기억을 되집어내려고 애쓰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사고 이전의 기억을 통한 비연속적인 삶. 하지만 그 기억마저도 잘못된 것이라면?

영화는 과연 우리가 기억에 대해 얼마만큼 확신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레너드는 자신이 겪고 있는 현상을 합리화 시키며, 기억의 효율성을 보정하기에 이른다. '기억은 기록이 아닌 해석이야' 라고 주장하며 철저히 사건을 기록하고 메모하지만 정작 그 또한 기억이라는 존재에 기대어 삶을 이어나간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범인. 그 날의 끔찍한 악몽. 그것이 레너드가 살아가는 이유에서 나타나 듯 말이다. 기억은 그렇게 우리에게 있어 커다란 신의 축복이자 절망이다. 


무드셀라 증후군 (Mood Cela Syndrome)

심리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무드셀라 증후군은 추억이 항상 아름답다고 하며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는 정신병의 일종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대표작 <메멘토>는 이 증후군의 상태를 가장 적절한 예로 표현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기적인, 혹은 너무 아름다운 과거로의 퇴행. 기억과 망각이라는 아주 단순한 두 존재가 미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과거의 집착들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현상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기억이라는 존재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걸까.  선택적인 기억의 편린 속에서 추억은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그는 누구인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은 1970년 7월30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런던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 놀란은 7살때 영화를 찍기 시작하여, 수퍼 8mm 초현실주의 단편 영화 <타란텔라> 는 1989년 PBS 영상조합에서 상영되기도 하였다. 대학 영화 소사이어티에서 16mm 영화를 만들면서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고, 그의 단편영화 <도둑질>은 캠브리지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그 외에 초현실주의 단편영화 <개미귀신>을 만들었고 <미행>으로 첫 장편에 데뷔했다. 


2000년, 두번째 장편 연출작 <메멘토> 로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동생 조나단 놀란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형식의 이 스릴러는 그 해 각종 영화제의 각본상을 휩쓸었다. 이후, 영화 베트맨의 리프래시 시리즈의 연출로 발탁되어 흥행감독으로의 입지를 굳혔다. 그의 대표작이 된 <배트맨-다크나이트> 시리즈외에도 2006년 <프리스티지>, 2010년 <인셉션> 등을 통해 대중성 뿐 아니라, 스타일과 작품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나는 지금 어디에 있었지?

영화가 절정으로 치닫으면서 주인공 레나드는 사고 이전의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한다. 그를 잘 알고 있는 나탈리와 테디라는 극중 인물들은 그의 상태를 이용하며 레나드의 삶을 어지럽힌다. 결국 그 과정에서 레나드는 현실을 직시하지만 그 역시도 부정해 버리고 만다. 이것이 바로 메멘토라는 영화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그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과거로의 도피를 시도한다. 밝혀져 버린 진실을 외면하고 퇴행을 반복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었지?' 가 아닌,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싶은가?' 를 나타내는 감독의 의중은 훌륭했다. 



사실 삶이란 행복과 불행이라는 불가분적 관계속에서 태어나기 마련이다. 과거라는 굴레속엔 희.노.애.락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들 모두를 포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나쁜 습성이나 행동, 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마저도 삶의 도구가 될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 <메멘토>라는 영화는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면 기꺼이 하지' 라는 극 중 대사는 삶의 방향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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