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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 DAY 01. 생각보다 힘들었던 피레네 산맥, 그리고 오리손(Orisson) 산장

2017년 4월 6일 

총 거리 8km (4시간 소요)  

출발 생 장 피데 포드 Saint Jean Pied de Port  

도착 오리손 Orisson


산티아고 순례길, 그 시작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순례자 사무실은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모두 거쳐가는 곳으로 순례자를 위한 여권과 지도, 필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일단 기본적인 인적 사항등을 적은 뒤 순례자 여권을 발급해 주는데 처음 도장이 찍혔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기뻤다. 


순례자 여권, Credencial(크레덴시알)


순례자를 상징하는 가리비를 조심스럽게 배낭에 걸고 순례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고작 하루 뿐이었지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기가 무척이나 아쉬웠다. 아침 일찍 집 앞을 청소하러 나온 한 아주머니가 힘내라며 건네준 주전부리를 감사히 받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한달 뒤,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안녕, 생 장 피데 포드(Saint Jean Pied de Port)


산티아고 순례길, 피레네 산맥을 넘다. 


쌀쌀했던 새벽 공기를 채 즐기지도 못했는데, 시작부터 오르막의 연속이다. 해발 1,400미터의 높이를 자랑 하는 피레네 산맥의 초입에서 부터 이미 쩔쩔매다니. 강원도 설악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신랑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거들먹 되더니 곧 거친 숨을 내쉬며 후회를 한다.  연속으로 쉬지 않고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고난의 길이었고, 몸과 배낭의 무게를 실감하게 해주는 길이었다. 예약이 안될 줄 알았던 오리손 산장의 알베르게에서 묵지 못했더라면, 이 길이 훨씬 더 힘들었겠지. 


피레네 산맥의 초입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뒤돌아서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산등성이가 푸른 초원을 이루고, 양떼와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속에 응어리가 풀어지는 듯 개운한 느낌이었다. 


끝나지 않는 오르막을 걷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어느새 온 몸에 땀이 흐른다. 십분에 한번씩 주저 앉아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인가'에 대한 쓸데없는 푸념을 하며 걷기를 한시간 째. 계속해서 우리를 앞지르는 순례자들을 보며, 그 동안 체력관리를 얼마나 안했는지 뼈저리게 후회를 했다. 길은 점점 험해져가는데, 산장은 도통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줄인다고 줄인 배낭의 무게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한 듯 점점 더 어깨를 짓누른다. 


힘겹게 산을 오르는 순례자들


아름다운 풍경의 피레네


벌써 정오, 힘들때마다 쉬어갔던 우리는 함께 출발했던 사람들보다 훨씬 늦게 오리손 산장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날을 보내고 있었다. 배낭을 던지고 맥주와 샌드위치로 허기진 배와 목마름을 달래고 나니, 이제 걱정이 몰려온다. 고작 8킬로미터를 걸었을 뿐인데 4시간이라니. 하루에 20킬로미터를 도대체 어찌 걸을 수 있느냔 말이다. 물론 생장에 오기까지 몸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내겐 너무 완벽했던 하루, 오리손 산장에서


순례길의 첫 날, 우리가 하루 머물게 될 오리손 산장은 대략 50명 정도 숙박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리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규모였다. 6인실 방을 배정받고 같은 방을 쓰게 된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곧 샤워와 빨래를 한다. 오리손에서의 하루는 대체적으로 좋았지만, 산 중턱에 위치한 산장이라 물이 귀한 모양이다. 작은 코인 하나를 넣으면 5분 동안 샤워를 할 수 있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한 탓에 제대로 씻긴 한건지 조금 불편했다. 신랑은 결국 시간이 부족해 샤워 중간에 물이 끊겨 겨우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나왔다고 한다. 


빨래를 하고 나면 순례자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된다


함께 방을 쓰게 된 4명의 다른 순례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사람에 비해 적은 화장실과 물을 아끼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하루 종일 땀에 젖은 몸을 5분만에 씻기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웃음은 떠나지 않는 순례자들과의 긴 수다는 즐거웠다. 체구는 작지만 야무진 노르웨이의 엘리나, 미국에서 온 존, 덩치가 커서 작은 침대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유쾌한 호주 남자 피터, 그리고 기이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한국에서 온 어르신.  


인연을 만나는 것은 항상 즐겁다


이미 오래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신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걷겠다며 일행과 떨어져 오리손 산장에 묵기로 하셨다고 한다. 연세가 있으신 탓에 무릎이 조금 아프셔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겠다고 하신 이 분은 카톨릭 신자라고 본인을 소개하신다. 함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신랑이 어릴 적 부터 살았던 고향에 사시던 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더욱 반가웠다. 


오리손 산장에는 샌드위치, 와인, 디저트 등을 판매한다.


저녁식사 까지는 아직 한참이 남은 시간이라 전날 만난 부부와 어르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르신은 순례길에 대한 정보와 이 길을 걷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곧이어 비싼 와인 한병을 사가지고 오셨다. 언어가 잘 통하시지 않아 조금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도, 그 연세에 홀로 이 곳을 걷는다는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친구처럼 편안히 우리를 대해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나이를 불문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해 주시는 어르신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오리손 산장에 머물지 않는 순례자들은 이 곳에서 물을 가득 담아 갈 수 있다


순례길에서의 첫 저녁식사는 완벽했다. 약 40명 정도의 사람들이 식당에 둘러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알베르게 주인의 요청에 의해 각자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한껏 들뜬 표정으로 왜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본인에게 이 길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호주, 뉴질랜드, 라트비아, 덴마크, 노르웨이, 한국 등 국적이 다양한지라 자신을 소개하는 언어도 제각각이지만 '뭣이 중한디' . 다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표정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모두의 안녕을 기도하며 


그래, 씻는 것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에 뒤척이면서도 나에게 순례길의 첫 날, 오리손 산장에서의 모든 것은 완벽, 그 자체였다. 아이와 함께 이 길을 걸어 보겠다는 중년의 남성도, 결혼한지 40년이 되어간다는 미국에서 온 부부도, 이제 다 커버린 듬직한 아들 3명과 함께 긴 여정에 나서는 버지니아의 씩씩한 여성도, 모두 무사히 그들만의 길을 찾고 행복한 삶을 이어가겠지.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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